입후보제로 리더를 선택하면 자아가 강한 자들이 나오게 된다. 그 중에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싶어 하거나 지위와 명예를 추구하는 욕심 많은 자, 똑똑한 자들이 포함된다. 그리고 그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그 조직을 싫어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교적이고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매일 함께 지내는 가까운 가족이나 동료들은 그 사람의 이면의 성격을 알고 있다. 사회의 리더를 선택하려면 이런 시각이 필요하며, 추천을 통해 리더를 선택하는 것이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하는 데 더 적합하다.
자신이 리더가 되려고 하는 사람보다는, 개인적인 태도를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받는 성실한 리더가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하는 데 적합하다.
일상적으로 무심해지려 노력하고 의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힘쓰면, 욕망은 점차 사라진다. 따라서 스스로 손을 들고 리더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변에서 추천할 필요성이 생긴다. 그런 리더는 내면에 싸움이 없으므로 누구와도 다투지 않으며,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
겸손하고 성실한 리더를 선택하더라도, 그 주변의 대다수가 자아가 강한 사람들일 경우, 리더의 의견은 무시되거나 금방 무너질 것이다. 성실한 리더는 성실한 리더나 멤버들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로 인해 평화롭고 온화한 사회가 지속될 수 있다.
국민들이 리더의 선출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면, 결국 독재자가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때 사람들이 이 리더를 비판하겠지만, 국민의 무지와 무관심이 그 시작이다.
자아는 항상 공격할 대상을 찾고 있으며, 끝없이 물질적인 것을 더 많이 요구한다. 자아가 강한 인물이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면, 영토를 더 넓히려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무기도 사용하고, 교활한 방법도 써서 상대를 공격하려 한다. 그로 인해 주변 국가들이 무장하고 군사력을 강화하더라도, 다양한 각도에서 흔들어 놓으려 하며, 침략을 위한 틈을 만들려고 한다. 각국의 리더들이 자아가 강한 사람들일 때 침략은 없어지지 않으며, 전쟁도 끝나지 않는다.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는 평화롭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언제까지나 오지 않는다.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하는 유일한 길은, 전 세계에서 자아에 대한 집착이 거의 없는 인물을 리더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을 전 세계 사람들이 이해하고, 그런 인물을 리더로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화로운 사회는 근본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전 세계 사람들이 적어도 평화로운 사람을 리더로 선택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지 않으면,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리더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기 시작하면 교체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성실성이 없는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일 수 있다.
젊은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적성과 부적성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리더는 그들의 업무 태도를 관찰하고, 잡담 등을 통해 성격적인 특징을 파악한다.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의식의 본성 그 자체이다.
조언을 하지 않아도 단지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직원들은 리더를 신뢰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것은 상대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려는 사랑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공감받으면 큰 기쁨을 느낀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공감하는 것은 상대에게 기쁨과 힘을 주는 것이다.
리더가 다그치는 듯한 말투를 사용하면, 숨이 막힌 직원들은 떠나게 된다. 다그칠 때, 상대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 통제하려는 것이다. 즉, 자아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파멸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을 역이용하여 상대의 성장을 촉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강하게 말한 후에는 부드럽게 배려하는 등 균형을 맞추고 있다.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리더가 부정하면, 아무도 아이디어를 내지 않게 된다.
리더 자신이 말하는 방식, 대하는 방식, 부탁하는 방식, 돕는 방식을 사랑, 존경, 감사가 포함된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면, 직원들의 움직임이 변하게 된다.
자주 밥을 사주거나 물건을 자주 주는 사람이 있을 때, 그것만으로 자아가 얇고 넓은 그릇을 가진 사람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자존심을 위해 누군가에게 밥을 사주거나 물건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허영심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리더는 직원들에게 귀가 아픈 말을 해야 하지만, 그 말은 가끔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가시기만 하게 된다. 성가신 사람도 상대를 생각해서 말하고 있지만, 상대의 자아는 그 지적을 비난으로 느껴 저항하거나 비협조적이거나 공격적이 된다.
사람에게 주는 조언은 긍정적인 말을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엄한 말이나 비관적인 견해를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긍정적인 말이 80%, 부정적인 말이 20%를 기본으로 하고, 시기나 상대에 따라 그 비율을 반대로 바꾸는 것이 균형이 좋다. 엄한 말이 많으면 사람은 떠나게 된다.
숙련자가 초보자의 노력을 보면,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 대체로 금방 알 수 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하기보다는, 그 자리는 참는 것이 좋다. 매번 바로 지적이 들어가면, 하는 사람의 자아는 두려움을 느끼고,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나중에 차분해졌을 때, 적은 횟수로 조언하는 것이 상대도 받아들이기 쉽고 위축되지 않는다.
프라이드가 높고 귀가 막혀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해도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사람이 실패해서 창피를 당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때서야 비로소 주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는 조짐이 보인다. 귀를 강제로 열려고 하면, 자아는 더 완고해진다. 그러나 프라이드가 높은 사람일지라도, 사랑을 가지고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신뢰를 높이고 의견을 귀 기울여 듣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의식적으로 존재하는 사람일수록, 고집 센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이 쉽다.
힘들어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엄격하게 지도하든, 부드럽게 지도하든, 개선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부드럽게 가르쳤을 때,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다. 실패를 비난하지 않았던 것이나 협력해 준 것에 대해 보답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가지고 다가가는 것이 기본이 된다.
직장에서 실수가 많은 사람에게는 적재적소를 재검토하는 것이 좋다. 화를 내도 그 사람은 그만두기만 할 뿐이다.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문제는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로운 일이 천직이나 적직에 가까울수록 직감이 예리해지므로 능력도 발휘된다.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할 때는 직감이 잘 발휘되지 않는다.
자아가 얇고, 성실하며 일을 잘하는 사람, 이해력이 높은 사람, 의욕이 있는 사람, 꼼꼼한 사람, 자기를 자제할 수 있는 사람, 동료를 배려하는 사람 등, 이러한 직원들과는 일이 잘된다. 리더가 다소 철저하지 않아도 그들이 도와준다. 반대로, 자아가 강하고 성실성이 낮은 사람과의 일은 고생이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리더는 머리를 써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인 대응책이 지혜로 변해 몸에 익혀진다. 리더를 키우는 데는 후자의 조직을 맡기는 것이 효과적이다. 고생이라고 보면 힘들지만, 성장이나 깨달음의 계기로 보면 나쁜 것이 아니다.
조직에서는 리더의 지시에도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게 해본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신뢰하고 안심할 수 있는 친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사람과 함께 일하면, 상대방과의 신뢰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아서 일을 제대로 하려 한다. 자아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을 적대시하지만,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미움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극적으로 개선되지는 않는다.
욕심이 강하고 자신의 몫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성공 보수형이 적합하다. 자아는 자신을 위해서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 타입이 조직에서 일하면,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 다른 사람 탓을 하는 경향이 있고, 음침한 분위기가 조직에 형성되기 쉽다. 변명할 수 없는 상황에 놓는 것이 적합하다.
자아가 강한 인물과 자아가 얇은 인물을 같은 그룹에서 일하게 하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다. 자아가 강한 인물은 자아가 얇은 사람을 이용하기 시작하고, 자아가 얇은 사람들은 일할 의욕을 잃어가게 된다.
조직과 리더는 무심이 되어 의식으로 존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면, 조화로 나아간다.
○돈의 사회
정치, 경제, 교육, 복지, 의료, 과학, 오락 등 모든 산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그 중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거의 모두,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돈과 관련이 있다. 그 이유는 이들 산업의 외부에 "돈"이라는 큰 틀이 있기 때문이다. 이 큰 틀을 벗어난 탈화폐 사회에 해결책이 있다.
벌거벗은 채로 들판이나 정글에서 살던 인간이 우주로 로켓을 쏘아 보내고, 인터넷으로 국제 교류를 하는 데까지 과학을 발전시킨 것은 돈의 사회가 효과적이었다. 이를 통해 더 얻고자 하는 자아가 자극을 받아 경쟁과 전쟁이 생기고, 기술, 지성, 조직이 발달하며, 편리해지기도 했다. 다만 그 과학 기술은 지구 환경에 악영향을 미쳐 멸망에 이를 지경까지 왔다.
돈의 사회에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욕망이 있는 경영자가 사업을 성공시키기 쉽다. 무심으로 있는 사람에게는 그 정도의 욕망이 없다. 돈의 사회에서 돈을 갖는 것은 권력을 갖는 것이기도 하지만, 돈을 빼앗고자 하는 경쟁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돈을 얻을 필요가 없는 사회를 구축할 때, 무심으로 있는 사람들이 리더로서 나서기 쉬워지고, 경쟁이 없으며 자연환경이 보호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돈의 사회에서는, 똑똑함이 좋은 학력과 직결되며, 좋은 학력은 좋은 회사에 취직하거나 안정적이고 높은 급여로 이어지고, 국가는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인재 양성으로 연결된다. 돈을 기준으로 사회의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이 구조는 획득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무심으로 있는 본질적인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지 않다.
돈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증가하기 때문에 가치관이 획득에 크게 치우친다. 돈의 획득, 물건의 획득, 직위의 획득, 명성의 획득, 사람의 획득, 기술의 획득. 획득으로 기뻐하는 것은 "나"라는 자아이다. 자아는 자연의 순환이 보충할 수 있는 자원을 초과하여 그것을 소모한다. 무심으로 있을 때, 획득이라는 욕망은 약해지고 자연의 순환 내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획득만 이루어진다.
돈의 사회에서는 자아의 멈추지 않는 욕망이 물건을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팔게 하며, 그만큼 천연 자원은 계속 사용되고, 쓰레기도 계속 증가한다. 경제 성장은 이것의 반복이다. 경제 성장이 반비례하여 자연 환경은 파괴되어 간다.
더 많이 더 많이 요구하는 돈의 사회는 자아를 강하게 하고 무심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렇게 도덕과 절제도 약해진다.
돈의 사회는 개인적인 손익의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규칙과 규제가 늘어나고 복잡해져 간다.
규칙을 세밀하게 늘려도, 이를 피하는 자가 나타날 것이다. 특히 돈에 대한 욕망이 얽히면 더 그렇다.
담백한 음식에 익숙해지면, 화폐 사회의 음식이 얼마나 진한 맛을 가졌는지 알게 된다. 자극은 사람을 중독하게 만든다. 중독시키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병자는 더 늘어난다. 중독되는 것도 자아이다.
돈의 사회는 돈을 빼앗는 사회다. 그래서 승자가 있고 패자가 생긴다. 이렇게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또는 저소득층은 수백 년 동안 전 세계에서 계속 존재해왔다. 돈의 사회란, 모두가 평균 이상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불공평해지는 구조이다. 그것은 돈을 버는 것이 능숙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으로, 일부 대부호가 돈을 독점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소득자가 되는 구조이다.
돈의 사회에서 과도한 집중은 효율적으로 이익을 창출하기 쉬운 면이 있지만 약점도 있으며, 재해 등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도시로의 인구 집중, 한 곳에서의 대량 생산, 수입원이 한 회사에서만 나오고,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 등의 문제들.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탈화폐 사회를 구축했을 때, 인구 분포도 농업도 제조업도 분산형 사회가 이루어진다.
어떤 작은 회사라도 돈의 사회에서 사업을 시작하면, 우선 생존이 첫 번째 우선순위가 된다. 그러면 자연환경 등에 대한 배려는 두 번째 이후가 된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매일 몇 시간씩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된다. 그것이 직장이다.
일을 빨리 끝내고 멍하니 있으면, 게으르게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일을 하고 있는 척이 많아진다. 그것이 직장이다.
한 사람만 정시에 퇴근하면 비난받을 불안이 있어, 1~2시간 정도 서비스 잔업을 하게 되는 곳, 그것이 직장이다.
남자는 수입이 낮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나"라는 자아는 수입의 낮음을 능력의 낮음으로 느끼며, 패배로 느낀다.
돈의 사회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기소개를 할 때, 자신의 직업이나 직위를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일이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그래서 직업이 없으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기소개에서 직종이나 직위를 말하는 것은 자아로서 과거의 기억, 경력을 설명하는 것이다. 즉 본래의 모습인 의식에 관한 것이 아니다. 학생, 아르바이트, 프리터, 샐러리맨, 경영자, 정치인과 같이 자아에 사로잡히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연기하는 것이다. 그 자아는 손익 관계나 상하 관계를 만든다. 그러면 진정한 우정은 싹트기 어렵고, 일시적인 직장 내 관계가 된다. 의식으로서 존재하는 관계는 어린 시절부터 10대까지 쌓은 우정처럼, 상하나 손익이 없다.
천직이나 적직이라 할지라도, 인기 없는 것이나 돈이 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러면 생활할 수 없고 지속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돈의 사회는 인간의 표현 범위를 좁히는 경향이 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며, 열심히 하면 언젠가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은 노동 신앙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것도 상식이라는 과거의 기억에서 오는 생각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없어지고, 친구와 놀 시간이 없어지며, 자유롭게 쓸 돈도 없어지고, 그에 비해 일의 스트레스와 가정에 대한 불안은 늘어난다. 그것이 돈의 사회에서의 결혼이다.
돈의 사회에서 월요일 아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우울하다. 좋아하지 않는 일이나 학교를 위해 열심히 해야 한다. 돈이 없는 사회나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오늘은 무엇을 할까 하고 기대되는 기분이 된다.
○끝내며
प्프라우트 빌리지는 과학 기술 등을 결합하여 마을 만들기를 진행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인간의 언행에 직접 연결되는 자아와 의식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핵심이 된다. 왜 인간은 고통을 겪는가, 왜 다툼이나 문제가 발생하는가 하는 것은 모두 자아와 생각이 있기 때문이며, 의식적으로 의식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평화롭고 온화한 사회를 구축하는 토대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प्프라우트 빌리지와 함께 다가오는 이 시대는 인간의 정신 향상의 시대이기도 하다.
저자 Hiloyuki Kub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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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사회 प्프라우트 빌리지 제2판
저자 Hiloyuki Kub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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